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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공주, 활기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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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명승

공주공산성(公州公山城)
  • 지정번호사적 12호
  • 소재지충남 공주시 산성동, 금성동, 옥룡동
  • 지정일1963-01-21
  • 규모면적 371,621.3㎡, 길이 2,660m
  • 조성시기삼국시대

소개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에 있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다. 암문, 치성, 고대, 장대, 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 영은사, 연지, 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ㆍ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ㆍ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