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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GONGJU CITY

이달의 역사인물

2021.12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오시수

  • 12월의 역사인물 수촌 오시수(水邨 吳始壽, 1632 ~ 1681) 선생은 우의정을 역임한 조선후기 문신으로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 경세가이자 동복오씨의 공주 입향조인 인물입니다.
  • 동복오씨와 공주와의 인연은 선생의 증조부인 오백령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백령은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때 임금을 호종하면서 공주를 4차례 방문하였으며, 이후 3대에 걸쳐 4명의 충청도관찰사(오단, 오정원, 오정위, 오시대)를 배출하며 공주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 동복오씨가 공주와 인연을 맺게 된 이후 오시수 선생이 공주로 입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버지 오정원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오정원은 충청도관찰사 재임 중 의당의 수촌에 자신의 묘소 자리를 정하였으나 수촌의 묘소 자리는 외가였던 청송심씨에게 양보하고 우성면 단지리에 자신의 묘소 자리를 잡았습니다.
  • 이후 오정원이 1667년(현종 8) 별세하자 선생은 단지리에 아버지의 묘를 쓰고 사당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으며, 1681년(숙종 7) 선생이 별세하자 아들 오상유와 아우 오시적은 인근에 선생의 묘를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성면 단지리에는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오시수 신도비*와 묘소가 남아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시수 신도비 :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우성면 단지리 묘소 앞에 2기가 존재하고 있다. 오른쪽 신도비는 1694년(숙종 20)에 건립된 것이며, 왼쪽 신도비는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추탈되었던 관직이 복관된 뒤 1810년(순조 10)에 건립한 된 것이다. 동복오씨 삼위효열정려[공주시 향토문화유적(유형) 제31호], 오백령 사우와 함께 있으며, 뒤 구릉에는 오시수 선생의 묘소와 오시수의 부친 오정원의 묘가 함께 있다.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다.

  • 선생의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수촌(水邨)이며 1659년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오정원의 아들로 1632년에 한양에서 태어났습니다.
  • 1656년(효종 7) 25세의 나이로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와 이조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거쳤으며, 효종과 숙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평안도관찰사, 강화부유수, 도승지, 이조판서 등 주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679년(숙종 5) 48세의 나이로 우의정이 되었습니다.
  • 특히 선생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전라도관찰사로 재임할 때는 구황책을 제시하였으며, 호조판서 재임 당시에는 새로 개간한 농지는 2년간 세금을 걷지 않도록 조처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 하지만 1680년(숙종 6) 집권세력인 남인이 정계에서 대거 축출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는‘경신환국(庚申換局)’에 연루되어 1681년(숙종 7) 6월에 사사되었습니다.
  • 후손들은 선생의 신원복관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노력하여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당시 관작을 회복하게 되지만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다시 서인세력이 재집권하면서 관직을 추탈 당하였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노력한 끝에 1784년(정조 8)에 관작이 다시 회복되었으며 저서로는『수촌집(水邨集)』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공주시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 경세가이자 동복오씨의 공주 입향조인 수촌 오시수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1년 1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 귀국 후 선생은 차를 칭송하는 도서인『다부』를 지었는데, 세부적으로 차가 주는 오공(五功)·육덕(六德)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우리나라의 차 문화 보급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차 관련 전문서적 중 가장 오래됐으며 최고의 서적으로 그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선생은 차의 아버지인 다부(茶夫)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 공주시는 대쪽같은 기개와 강직한 성품을 지닌 절의의 선비이자 우리나라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차 관련 전문서적인「다부」를 쓴 한재 이목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1년 11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카드뉴스

2021 12월 오시수1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1 12월 오시수2 2021 12월 오시수3 2021 12월 오시수4 2021 12월 오시수5 2021 12월 오시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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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공주시, 12월의 역사 인물 ‘수촌 오시수’ 선정
  • 공주를 고향 삼은 동복오씨의 공주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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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시 12월의 역사인물에 조선 후기 문신 ‘수촌 오시수’
  • 市, 우의정을 역임한 조선후기 문신으로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 경세가 ‘수촌 오시수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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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월의 공주 역사인물 포스터 이미지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해주세요
2021年 12월의 공주 역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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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오씨, 공주를 고향삼다. 수촌 오시수 1632-1681

오시수는 조선 후기에 활약한 문신으로 동복오씨의 공주 입향조이다.

165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청요직을 거치고 효종과 숙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구황책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오시수가 공주로 입향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재임한 오정원의 묘소자리를 우성면 단지리 월굴月窟에 잡고 살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공주와 동복오씨의 인연은 임진왜란 시기 증조부인 오백령부터 있었으며, 이후 3대에 걸쳐 4명의 충청도관찰사를 배출하여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오시수는 1680년 경신환국으로 인해 탄핵되어 사사되었으나 1784년 관작이 회복되었다.

저서로 『수촌문집』이 전해지고 있으며, 우성면 단지리에는 공주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된 오시수 신도비와 묘비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