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역사인물 긍양(정진대사)의 성은 왕 씨로,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한 공주 출신의 승려입니다. 878년(헌강왕 4) 공주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임금의 스승으로 이름을 높인 인물입니다.
긍양은 어려서부터 출가하여 공주 남혈원(현재 금학동 남혈사지) 여해선사의 제자가 되었고, 서혈원(현재 웅진동 서혈사지) 양부선사의 법(法: 불교의 삼보)을 이었습니다.
23세가 되던 900년(효공왕 4),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곡산사 도연선사의 문하로 들어간 긍양은 “도연의 제자들 가운데 긍양을 능가하는 이는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도를 닦았습니다.
이미 학승이자 선승으로 이름이 높았던 긍양은 24년이 지난 924년(태조 7)에 귀국하여 스승 양부선사가 있던 강주(현재 진주) 백엄사(伯嚴寺)에서 불법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져 신라의 경애왕도 귀의의 뜻을 전하며 봉종대사(奉宗大師)라는 호를 내렸습니다.
긍양은 무너진 산문을 일으켜 세웠을 뿐 아니라 설법할 때 대중 3,000여 명이 운집할 정도로 법력을 떨쳤고, 이 영향으로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이 성립되었습니다. 봉암사는 이후 광종의 직접 후원을 받은 고려 삼원(三院)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고려 태조는 물론 혜종·정종·광종 등 역대 왕이 모두 긍양을 스승의 예로 대하였습니다. 특히 951년(광종 2년)에는 광종의 요청으로 개경의 사나선원에 머물며 왕으로부터 증공대사(證空大師)라는 존호와 함께 스승으로 예우받았습니다.
긍양은 향년 79세, 법랍 60세로 956년(광종 7년) 8월 봉암사에서 입적(入寂)했으며 광종은 정진대사(靜眞大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초상을 그리게 했습니다.
고려시대의 승탑은 국사(國師)나 왕사(王師)에 오른 이만 세울 수 있었는데, 광종의 명으로 965년(광종 16년) 건립된 것이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입니다. 이는 통일신라의 기본 양식인 팔각 원당형의 부도탑으로 고려시대 초기 승탑의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또한 전반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각된 문양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공주시는 고려 다섯 임금의 스승이자 선승으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던 승려 긍양의 삶을 기리고자 2023년 7월의 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카드뉴스
다섯 임금의 스승 긍양 878~956
긍양은 878년 형강왕 4 웅주熊州, 옛 공주에서 태어났다. 성은 왕씨이며, 공주 출신 승려로써 신라 말 ~ 고려 초에 이름을 높인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남혈원으로 출가하여 수행하다가 900년효공왕 4 당나라로 건너가 법을 배우고 924년경명왕 8 귀국하였다. 선승의 경지에 올라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으며, 신라의 경애왕은 봉종대사라는 법호를 내렸다.
935년경순왕 9 문경의 희양산에 있는 봉암사를 다시 세우고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을 확립시켰다. 봉암사는 이후 고려 삼원三院의 하나가 되었다.
고려 태조는 물론 혜종·정종·광종 등 역대 왕이 모두 긍양을 스승의 예로 대하였으며, 광종은 증공대사證空大師라는 존호를 내렸다.
956년광종 7 봉암사에서 입적하자 광종은 정진대사靜眞大師라는 시호와 원오지탑圓悟之塔이라는 탑명을 내리고 초상을 그리게 했다. 965년광종 2 탑비가 세워지고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