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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오시수
오시수 신도비 :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우성면 단지리 묘소 앞에 2기가 존재하고 있다. 오른쪽 신도비는 1694년(숙종 20)에 건립된 것이며, 왼쪽 신도비는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추탈되었던 관직이 복관된 뒤 1810년(순조 10)에 건립한 된 것이다. 동복오씨 삼위효열정려[공주시 향토문화유적(유형) 제31호], 오백령 사우와 함께 있으며, 뒤 구릉에는 오시수 선생의 묘소와 오시수의 부친 오정원의 묘가 함께 있다.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공주시 로고
동복오씨, 공주를 고향삼다. 수촌 오시수 1632-1681오시수는 조선 후기에 활약한 문신으로 동복오씨의 공주 입향조이다.
165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청요직을 거치고 효종과 숙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구황책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오시수가 공주로 입향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재임한 오정원의 묘소자리를 우성면 단지리 월굴月窟에 잡고 살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공주와 동복오씨의 인연은 임진왜란 시기 증조부인 오백령부터 있었으며, 이후 3대에 걸쳐 4명의 충청도관찰사를 배출하여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오시수는 1680년 경신환국으로 인해 탄핵되어 사사되었으나 1784년 관작이 회복되었다.
저서로 『수촌문집』이 전해지고 있으며, 우성면 단지리에는 공주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된 오시수 신도비와 묘비가 남아있다.